퇴직금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노동의 결과이자, 다음 삶을 준비하는 마중물입니다. 막상 그 시기가 다가오면 계산 방식과 세금, 지급 절차가 한꺼번에 얽혀 헷갈리기 쉽습니다. 준비가 없으면 세금에서 불필요한 손해를 보거나, 큰돈이 들어온 안도감에 계획 없이 지출해 금세 목돈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30년 동안 한 직장에서 묵묵히 일해 온 아버지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퇴직금이 어떻게 계산되고 어떤 순서로 정산되며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아낄 수 있는지 차분히 풀어보겠습니다.
퇴직금 계산의 출발점은 평균임금입니다. 법에서 말하는 평균임금은 퇴직 직전 3개월 동안의 임금을 기준으로 잡는데, 기본급만이 아니라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된 직책수당이나 식대 같은 고정수당까지 함께 반영됩니다. 다만 성과금처럼 일시적이거나 특정 성과가 있을 때만 주어지는 급여는 평균임금에서 제외될 수 있어 회사의 보수 체계를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퇴직 전 3개월의 평균임금이 450만 원이었고 근속연수가 30년이라서, 평균임금에 30년을 곱한 약 1억 3,500만 원이 퇴직금으로 산출되었습니다. 퇴직을 앞둔 몇 달 사이에 상여금이나 연장근로 수당이 급여에 포함되면 평균임금이 높아져 최종 금액에 영향을 주기도 하므로, 마지막 분기의 급여 구성은 의외로 중요합니다.
정산 절차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먼저 퇴직일을 회사와 공식적으로 확정합니다. 이어 최근 3개월 급여명세서와 인사 기록을 바탕으로 평균임금과 근속연수를 다시 점검합니다. 회사는 계산 결과를 담은 퇴직금 내역서를 발급하고,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지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별한 사정으로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근로자와 합의가 있어야 하며, 합의 없이 지연된다면 법적 분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퇴직 직후 회사로부터 퇴직금 내역서와 함께 퇴직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받았고, 실제 입금액이 내역과 일치하는지 계좌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원천징수영수증은 연말정산이나 금융거래에서 필요할 수 있으니 꼭 보관해 두어야 합니다.
세금 문제는 많은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입니다. 퇴직금에 적용되는 세금은 근로소득과 다른 퇴직소득세로 분류됩니다. 중요한 특징은 총액을 그대로 과세하지 않고 근속연수로 안분해 계산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오랜 기간에 걸쳐 발생한 소득으로 보아 세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라, 근속연수가 길수록 상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계산 과정에서는 일정한 공제가 먼저 적용되고 나서 과세표준이 정해지며, 그 결과에 맞는 세율이 부과됩니다. 아버지의 사례에서는 총 퇴직금 1억 3,500만 원 중 약 700만 원 정도가 세금으로 빠져나갔고, 실수령액은 약 1억 2,800만 원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급여 구조나 공제 적용 범위가 달라 세액은 차이가 날 수 있으니, 최종 산출 값은 회사의 계산서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세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해법은 퇴직금을 IRP, 즉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세금을 바로 내지 않고 이연할 수 있고, 만 55세 이후 연금 형태로 나누어 받을 때 비교적 낮은 세율이 적용됩니다. 한 번에 목돈으로 받는 것보다 세부담이 완만해지고, 노후 자금으로서의 성격도 더 분명해집니다. 또 하나 기억해 둘 점은 퇴직 시점과 근속연수의 관계입니다. 예컨대 근속 11년 11개월인 상태에서 바로 그만두기보다는 한 달을 더 채워 12년으로 만드는 편이 공제 측면에서 유리할 때가 있습니다. 퇴직 직전 3개월의 급여 구성도 무심코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변동급이 많은 직군이라면 불필요한 일시 급여에 기대기보다, 평균임금 산정에 반영되는 고정 항목을 중심으로 임금 구조가 왜곡되지 않도록 살피는 편이 안전합니다.
세금만큼 중요한 것이 수령 후의 운용 계획입니다. 큰돈을 손에 쥐고 나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이때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통장이 빠르게 가벼워집니다. 아버지는 가장 먼저 매달 이자를 갉아먹던 주택담보대출 일부를 상환해 고정 지출을 낮췄습니다. 이어 장기 노후자금은 IRP와 연금저축으로 나누어 묶어 두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생활비 6개월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비상금으로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남은 금액은 자녀 교육비와 생활 환경 개선에 썼는데, 사전에 정한 범위를 넘지 않도록 가족끼리 합의한 지출 한도를 지켰습니다. 이런 식으로 목적과 금액을 미리 정해 두면 충동적 소비를 막을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겨도 전체 계획이 틀어지지 않습니다.
정리해 보면, 퇴직금은 숫자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준비와 선택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평균임금의 범위를 이해하고, 근속연수가 세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며, IRP를 통한 과세 이연과 연금 수령 방식을 미리 결정해 두는 것만으로도 실수령액은 달라집니다. 여기에 수령 직후의 사용 계획까지 결합하면, 같은 금액이라도 체감 가치는 크게 커집니다. 아버지의 사례가 보여주듯, 퇴직 몇 달 전에 급여 구조와 퇴직 시점을 점검하고, 필요한 서류를 미리 챙기며, 자금 운용의 큰 그림을 그려두면 불확실성은 줄고 선택지는 넓어집니다.
누군가에게 퇴직은 끝에 가까운 사건처럼 느껴지지만, 자금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상 출발선에 가깝습니다. 퇴직금을 받는 그 순간부터 다음 10년, 20년이 달라집니다. 작은 수치 하나에도 의미가 생기는 시기이니, 계산 과정을 이해하고 서류를 꼼꼼히 챙기며, 세금과 노후 준비를 함께 고려해 움직이십시오. 그러면 긴 시간 쌓아 올린 노력의 결과가 단지 통장에 찍힌 숫자로 지나가지 않고, 이후의 삶을 단단하게 지지하는 토대가 되어 줄 것입니다.